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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8월 20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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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이휴정(二休亭)

발 딛는 순간 타임머신 타고 조선시대 온듯한 환상에 빠진다



이휴정은 이동영이 지었으나 나중에 울산 객사 남문루 해체분을 가져와 중건했다.


태화강 어느 전망 좋은 곳에 우뚝 서 있겠거니 했다. 정자 아래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물에는 철새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겠거니 했다. 울산의 자랑거리인 십리대숲이 바람에 일렁 거리는 풍경을 상상하기도 했다. 차가 강변도로를 벗어나 주택가로 들어서면서 불안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데 자꾸 헛발길이다. 내비게이션을 포기하고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 들어가자 이휴정이 겨우 눈에 들어왔다. 때로는 사람이 기계보다 아름답다.

이휴정은 울산광역시 남구 신정 1동 주택가 깊숙이 자리잡았다. 정자 뒤로 엄청나게 높은 고층 아파트가 산처럼 둘러쳐져 있는데다 주위가 온통 주택가 여서 정자에 발을 딛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들어온 듯한 환상에 빠진다. 학성이씨 월진파 문중에서 관리를 하는데 상당히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정자 옆으로 키큰 소나무와 오래된 배롱나무가 시립해 있고 정면 3칸 측면 2칸 필작지붕 형태의 정자는 잘 단장돼 있다. 기대했던 태화강물도 십리대숲도 도심에 가려 볼 수 없었다.



이휴정 인근에 주택과 고층빌딩이들어서면서 은월봉과 태화강은 볼수 없게 됐다.

이휴정의 주인은 이동영(李東英·1635~1667)이다. 그는 조선 현종때 문인인데 학성이씨 시조 학파(鶴坡) 이예(李藝)의 후손이다. 자는 화백(華伯)이고 호는 이휴정(二休亭)이다. 증조부는 이대배이고, 조부는 이한남, 아버지는 이천기다. 재예가 남들보다 뛰어났으며 경사와 필법에도 통달하였다. 1666년(현종 7) 식년시에 생원 3등 37위로 합격하였으나 불행하게 33세로 일찍 죽었다. 문집으로 ‘이휴정문집’이 있다. 미수 허목에게서 수학했다.

이동영은 생원에 급제하고 성균관에서 수학한 뒤 고향 울산에 내려와 후학 양성에 힘을 쏟는다. 그의 할아버지 난은 이한남은 임진왜란때 혁혁한 공을 세운 뒤 선대가 살던 곳을 떠나 태화강을 건너 월진 지역으로 옮겨왔다. 은월봉 아래 정자를 짓고 지은정(志隱亭)이라 이름했다. 이동영은 할아버지의 지은정이 소실된 자리, 황룡연이 보이는 태화강변에 정자를 짓고 산과 물, 즉 은월봉과 태화강의 아름다움을 취한 정자라는 뜻으로 이미정(二美亭)이라 했다.

1664년 어느날 이동영이 이미정에 있는데 지나가는 과객이 왜 정자 이름을 이미정이라 했는가라고 물었다. 이동영은 정자가 이수삼산(二水三山) 사이에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과객이 이수삼산 사이에 있다면 오미정(五美亭)이라 해야 마땅하다 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말하기를 “그대의 할아버지 난은공이 산수간에 머물면서 호탕하게 살았는데 이러한 것을 휴산휴수(休山休水)라 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벽에 ‘산과 산이 아름답고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곳이 더욱 아름답다. 물과 물이 아름답고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곳이 더욱 아름답다’라는 글귀를 남기고 떠났다. 그가 직지사 박세연이었다. 이동영은 즉시 현판을 이휴정으로 바꿨다.



이휴정은 은월봉과 태화강의 풍경을 즐기면 쉰다는 뜻, ;휴산휴수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동영이 쓴 ‘이휴정상량문’에 정자를 건립할 당시의 울산 풍경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임인년(1662)에 태화강 위에 좋은 터를 잡으니, 어부의 노래소리, 상선의 노젓는 소리 병양루의 장관이요, 모래톱의 해오라기, 오산이 금릉의 아름다움을 겸했구나.(중략) 어풍대, 황룡연, 개운포는 고리처럼 이어져 경계가 둥글게 열렸고, 은월봉 신학성, 문수산의 형국이 길게 펼쳐졌구나. 오래토록 운수가 막히고 어려웠다가 거연히 어느날 초옥을 지었다네”

이동영은 이휴정에 기거하면서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8가지를 골라 ‘이휴정 팔경’을 지었다. ‘화강야월’ ‘월하봉조’ ‘이화노수’ ‘삼산낙조’ ‘양사모종’‘연포귀범’ ‘염시청연’ ‘학성청람’이다.

인간 세상 멀리하고 쉼없이 청가를 읊고자 하니
얼음처럼 맑고 둥근 달은 하늘 끝을 빙빙 도네
적막한 가을 강은 옥녀굴을 이루었고
강 가운데 은은한 어부들의 노래 소리 흥을 일으키네
- 화강야월 / 밤에 태화강에 비친 달 -

비인 듯 구름인 듯 가랑비 휘날리고
바람 따라 나부끼는 아침 해를 보는구나
잠시 뿐인 청명정기 얻어
초목이 군생하여 제각기 빛을 내네
- 월봉조하 / 은월봉의 아침 안개



학성이씨 시조인 학파 이예를 배향한 용연서원. 이휴당 옆에 있다.

이휴정에는 이동영와 괴천 박창우(1637~1702)의 뜨거운 우정이 전해져 오고 있다. 박창우는 영천사람이다. 이동영과 함께 허목에게서 수학하고 같은 해에 사마시에 입격했다. 성균관에서 수학한 뒤 28세 때 울산으로 이사를 왔다. 이동영이 박창우의 손을 잡고 ‘만약 그대 가정을 우리 고을로 옮긴다면 그 어찌 다행이 아니겠는가’라는 요청을 받고서다. 박창우가 울산에 도착했을 때 이동영은 안신내에 정침과 행랑채 등 문이 6개나 되는 집과 곡식 서른 꾸러미, 옹기그릇과 여러 가지 살림살이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박창우는 ‘여러 물건이 곳곳에 으리으리하게 놓여 있었다’라고 기록했다. 이로써 박창우는 울산 송정마을 입향조가 됐다. 울산에 함께 살게 된 두 사람은 1966년 함께 사마시에 입격하고 성균관에서 공부한, 요즘 말로는 동기동창이다. 이들은 태화강에 배를 띄우고 시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경승을 체험하며 은일의 삶을 즐겼다.



이휴정 안에서 본 바깥풍경. 주택들이 빼곡이 들어서 정자가 마치 섬 같다.

“가을날 맑은 강에 배를 타니 푸른 하늘에 앉은 듯하고/ 밝은 달만 쳐다볼 뿐 강풍은 막을 수 없네/ 덧없는 인생 헛된 영화 취중 속에 꿈을 깬 듯 하고/ 넉넉한 진경은 그림 속에 그림 같네/ 번거러운 속된 세상 온종일 나그네는 분주이 북적이고/ 무엇이 강호와 유사한지 늙은 나는 자적하네 .(이동영, ‘태화강 배중에서 박괴천과 함께 시를 지음’) “가을 기운 거침 없이 서리를 내려도 달빛은 창공에 가득하고/ 배를 세내고 술을 사니 경풍도 서두르네/ 유유히 바람에 날려 어렵사리 인어굴을 지나니/ 끝없이 넓고 먼 옥제궁을 통과했네/ 청가에 절로 흥이 나니 마침내 가관도 멀리하고/ 호정들은 어찌 육병중만 취하는가/ 파선은 이미 떠나가도 그대 가희 이었으니/ 강호에서 쓸쓸한 늙은이 만들지는 않겠지.”(박창우 ‘태화강 배중에서 이화백의 운에 따라’

이동영은 1667년 병을 얻어 3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이휴정이 있던 자리에는 학파 이예를 배향하는 용연사가 지어졌으나 1782년에 웅촌면 석계리로 옮겨 가면서 일제 강점기 까지 빈자리로 남아 있었다.



이휴정 마당에 있는 돌벼루 이동영의 할아버지 이한남때 부터 내려오던 것으로 시회를 열때 쓰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는 조선시대말까지 이어져 오던 울산 객사를 소학교로 개조해 사용했다. 증축에 증축을 거듭한 끝에 운동장이 좁다며 객사의 남문인 태화루를 헐어버리자고 의견을 모았다. 일본인 군수가 남문루를 경매에 내놓았고 이를 학성이씨 월진문중의 이채일씨가 남문루 해체분을 사서 이휴정을 세웠다. 이휴정은 마루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방을 설치한 중당협실형인데 왼쪽 방은 포금헌(抱琴軒), 오른쪽 방은 우락재(寓樂齋)라고 이름했다.

이휴정 옆에 있는 용연서원은 학성이씨 시조인 학파 이예를 배향하는 곳이다. 이예는 울산 관아의 중인 계급 아전 출신이다. 1396년 자신이 모시는 군수가 왜구에 붙잡혀가자 군수를 구하기 위해 자진하여 대마도까지 잡혀간 후, 결국 군수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 공으로 신분을 올려주고 벼슬을 하사하였다. 이예는 이후로 40여 차례가 넘게교토, 큐슈, 오키나와, 대마도 등에 파견되었는데, 71세의 노년에도 대마도에 붙잡혀간 조선인 귀환 협상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외교관으로 활약한 43년 동안 지략과 협상을 통해 667명의 조선인을 일본으로부터 귀환시켰다. 용연서원은 강당과 동,서재가 있는데 서재인 온고재에는 서원 건립당시 발굴된 ‘학성 이천기 일가묘 출토복식’이 전시되고 있다.  [경북일보 2017.01.05]

독도본부 2017.01.09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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