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도본부는    · 시작페이지로    · 즐겨찾기    · 오시는길    · 메일보내기    · 사이트맵

2019년 04월 23일 화요일

내용검색  

녹둔도

대마도

울릉도

제주도

간도

위화도

이어도

  현재위치 > 독도본부 > 영토와 섬 > 대마도

 


쓰시마 섬 정벌한 이종무 장군

왜구소굴 응징… 해안가 백성 지켜

 

이종무 장군의 묘소

세종 명받고 출병후 침입 사라져
용인 수지구 고기동에 묘소 위치

초등학교 때 '한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렸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이 가사 중 '의천 천태종 대마도정벌 이종무 일편단심 정몽주 목화씨는 문익점'이라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곳에 등장하는 이종무 장군은 쓰시마 섬(대마도)을 정벌해 왜구로부터 백성들의 목숨을 지켜낸 인물입니다.

이종무 장군(1360~1425)은 22세였던 1381년 장군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는 데 참여해 공을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군인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고려 말부터 계속된 왜구의 노략질은 조선 건국 후에도 계속돼 해안지역 사람들은 항상 공포감에 휩싸여 있었고, 많은 사람이 숨지는 등의 피해가 계속됐습니다.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한반도와 중국 연안에서 활동한 일본 해적 집단을 말하는 것으로, 특히 고려 말 약 40년간은 피해가 극심해 해안가에는 사람이 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큰 피해를 주었던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섬은 원래부터 인구가 적고 농사에도 적합하지 않아 사람들이 굶주림을 면하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내에서는 내전이 심해지면서 정상적으로 일본 내에서 식량 수급이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쓰시마 섬사람들은 굶주림을 면하려는 방법으로 한반도와 중국에서 많은 약탈과 살육을 일삼은 것입니다.

쓰시마 섬의 노략질은 조선 건국 후에도 계속돼 해변을 중심으로 피해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1419년 왜선 50여 척이 충남 서천에 침입해 병선을 불태우고 백성들을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쓰시마 섬을 공격해 그동안의 해적질에 대한 응징을 단행함은 물론 왜구 침입을 근본적으로 단절하기 위해 정벌을 결정했습니다.

마침내 세종은 삼군도체찰사였던 이종무 장군에게 전함 227척과 병사 1만7천여 명을 거느리고 쓰시마 섬을 정벌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 장군은 쓰시마 섬에 상륙해 크고 작은 선박 129척과 1천940여 채의 집을 불태우고, 144명의 왜구를 죽이는 전과를 거뒀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쓰시마 섬에 잡혀 있던 조선인과 중국인을 구출함은 물론 쓰시마 섬의 책임자로부터 노략질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고려 말부터 우리나라 해안과 내륙지역까지 침입했던 왜구의 침입은 거의 사라졌고, 이후 임진왜란 전까지 쓰시마 섬과의 평화적인 통상관계가 지속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이종무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해군은 1995년 건조한 1천200t급의 한국산 잠수함에 '이종무 함'이라고 이름을 붙였었습니다. 이종무 장군의 묘소는 현재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79번지에 있습니다. /우장문 대지중 수석교사 [경인일보 2016.11.1]

독도본부 2016.11.23 www.dokdocenter.org

관련
내용
관련내용이 없습니다

 


| 개 요 | 이 책은 2008년도에 일본 중의원에서 독도문제와 ...

 

 
  Copyright ⓒ 2001.독도본부. All rights reserved
전화 02-747-3588 전송 02-738-2050 ⓔ-Mail : dokdo2058@korea.com
후원 :국민은행 024-047973-01-019(독도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