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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를 읽고

강걸수 울산시 북구보건소 보건행정과장

덕혜옹주는 고종이 환갑이 되는 해인 1912년 5월 25일 막내딸로 태어났다. 총독부는 황족인 덕혜옹주가 일본식 교육을 받도록 13살 때 일본으로 유학을 보낸다.

학교에선 매일 놀림의 대상이었고 지옥 같은 학교생활이 되풀이됐다. 덕혜는 고종인 아버지와 큰 어머니인 명성황후가 일본인에 의해 살해됐다는데 늘 앙심을 품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 덕혜는 대마도의 도주아들 다케유시와 강제로 결혼했다. 첫날밤 덕혜는 누워있는 남자를 내려다 봤다. 이제 자신은 이자의 여자가 됐다. 왜놈의 아내가 된 조선의 황녀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덕혜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흐느꼈다. 신랑은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자신의 주장을 쉽게 굽히지 않았다. 덕혜 또한 지나치게 영민한 탓에 적당한 타협은 없었다. 덕혜는 기모노를 입으라는 말에 기모노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등 신랑과 부닥치게 된다.

그 가운데 딸이 태어난다. 딸의 이름은 정혜였다. 여느 어린아이와 같이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엄마와 조금씩 갈등을 겪게 된다. 학교에선 조선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정혜는 성장하면서 점점 삐뚤어진 사춘기를 보낸다. 신랑의 집안은 그 때만 해도 대마도의 도주로써 하녀를 거느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연합국에게 패한 일본의 경제는 처참했다. 가정경제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가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시기였다.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한다. 신랑은 하녀는 물론 집도 처분하고 조그만 한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 무렵 덕혜는 딸과의 갈등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 정신병원으로 감금되고 만다. 딸은 끝내 엄마를 찾지 않고 자살을 하고 만다. 신랑은 재혼을 하면서 덕혜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난다.

고종의 막내딸이었지만, 볼모로 잡혀가 감내해야 했던 37년간의 비참한 생활, 강제결혼, 15년간의 정신병원 감금, 하나뿐인 딸의 자살, 조국의 외면, 조선최후의 황녀였지만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 그녀를 기억하는 자는 누구인가?

5. 16. 군사정부가 들어서서 귀환이 이뤄졌다. 박정희가 물었다. “덕혜옹주가 대체 누구요?”나는 대답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입니다. 덕혜옹주는 1962년 대한민국으로 환국돼 창경궁 낙선재에서 이방자 여사와 함께 여생을 보내다가 1989. 4. 21. 봄날에 창경궁 낙선재에서 77세의 일기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났지만 황녀로 살지 못했던 여인 누구보다 귀한 존재였지만 모두가 외면했던 그 여인은 그날 영원한 자유를 향해 먼 길을 떠났다. (본문인용) .[울산매일 2015/10/19]

독도본부 2015.10.24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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