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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8월 24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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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예산 해군으로 전환… ‘해양 패권’ 눈독

‘중국군 30만 명 감축’ 숨은 뜻은

2010년 이후 ‘해양이익’ 개념 쓰며 공세적 대응
중국해 이어 인도양·북극해 등으로 본격 진출

  
  지난 8월 20일부터 28일까지 중국과 러시아가 실시한 해상연합-2015(Ⅱ) 연합군사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에 입항한 중국 구축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9월 3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항일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에서 “중국은 평화 발전의 길을 갈 것이며 영원히 패권주의나 확장을 추구하지 않겠다”며 병력 30만 명 감축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를 중국이 평화 발전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국가는 없다.

2006년 후진타오 주석 ‘해양대국’ 강조

 30만 명 감군 선언의 이면에는 해군력 증강이 자리를 잡고 있다. 중국 해군의 증대는 중국의 해양굴기(海洋?起)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2004년 당시 후진타오 주석은 “신세기, 신세대 인민해방군의 역사적 사명은 확대되고 있는 국가이익을 보호하고, 세계평화를 보장하는 일”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2006년 12월 후 주석은 “중국은 이미 해양대국이며, 해군의 강화와 현대화를 지속할 뜻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제력 부상에 따른 중국군, 특히 해외 투사력의 상징인 해군력의 강화는 주변국들의 의구심과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각종 해양분쟁에서 공세적 대응

 주목할 부분은 중국이 2010년부터 각종 해양분쟁에서 매우 공세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9월 7일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과 중국 어선의 충돌 사건 이후 특히 그렇다. 이 시기를 전후한 인민일보의 보도를 보면 중국의 해양정책이 크게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인민일보가 ‘핵심이익’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경우는 2008년에 95건이었으나 2009년에는 260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 개념이 2010년 이후부터는 ‘해양이익(maritime interest)’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뀌었다. ‘해양이익’이 사용된 횟수는 2010년 30건, 2011년 58건, 2012년 100건으로 많이 늘어났다.

 동시에 중국 당국은 국민에게 조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일본명: 센카쿠) 열도가 중국의 영토라고 교육하고 있다. 동·남중국해도 마찬가지다.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배타적 제해권(制海權)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중국해군, 인도양·북극해 진출 가속화

 인도양으로의 투사도 마찬가지다. 중국 해군의 본격적인 인도양 진출은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 퇴치를 위한 유엔결의안 1838호가 채택된 2008년 10월부터다. 중국은 2척의 군함과 1척의 보급선을 파견했다. 이후 2011년 3월 중국 군함으로는 처음으로 프리깃함 마안산호와 수송선 첸다오후호가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인 아부다비 항에, 같은 해 11월에는 쿠웨이트 슈와이크 항에 입항했다. 2013년에는 중국의 핵 추진 잠수함이 최초로 인도양으로 나가기까지 했다. 중국은 또 자국의 군함을 정박시킬 수 있는 항구를 얻기 위해 인도양 인접국들과의 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이른바 진주 목걸이 전략의 일환이다.

 최근에는 북극해(北極海)로의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하루 전인 지난 2일 모두 5척(구축함 3척, 보급함 1척, 상륙함 1척)으로 이뤄진 중국 해군전단이 알래스카 근처 베링 해에서 작전 중인 것이 포착됐다. 중국 해군이 미국 연안에 근접해 항해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우성리 사령원, 해군력 기반 ‘중국몽’ 추진

 이러한 모든 것을 지휘하는 인물이 바로 우성리(吳勝利·70) 해군사령원(사령관)이다. 지난 2006년 중국 해군 수장 자리에 오른 우 사령원은 해군력을 기반으로 한 ‘중국몽(中國夢·중국의 꿈)’을 갈구하는 시진핑의 강력한 신임을 받고 있다.

  지난 1842년 아편전쟁으로 시작된 중국의 ‘굴욕의 세기’는 해군력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그는 지난해 8월 청일전쟁 120주년 기념식에서 “(오늘날) 더 이상 바다가 장애가 될 수 없다. 치욕스러운 역사는 끝났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지난해 가을 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가 있다. “과거엔 중국이 미국인이나 다른 외국인들이 중국에 들어와 중국의 비밀을 빼 갈까 봐 두려워했는데, 이제는 미국이 중국을 두려워한다는 말인가?”라고 말해 미국 측 인사들을 놀라게 했다. 미국 국방대학들에서 중국 군인들이 수학하는 것을 금지한 미국 의회의 규제조치들에 화를 내면서 한 말이다.

후임에 中 해군 영웅 쑨젠궈 등 부상

 현재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11인 위원 가운데 유일한 현역이자 최고령인 우 사령원은 2년 뒤쯤 퇴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017년께 예상되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19차 당대회)에서 후임 중국 해군사령원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후임 해군사령원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쑨젠궈(孫建國·63)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이다. 1986년 1월 1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의 핵잠수함 창정(長征) 3호가 90일간의 잠수 항해에 성공했다”고 긴급 타전했다.

   이는 미군이 보유하던 세계 최장 잠항(潛航) 기록 84일을 깬 세계 신기록이었다. 이후 중국 해군의 영웅으로 떠오른 창정 3호의 함장이 바로 쑨젠궈다. 1968년 입대한 이후 줄곧 잠수함부대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부인 궈야추(郭亞秋) 역시 잠수함학교 교원이며, 아들의 이름도 잠수함의 ‘잠(潛)’ 자를 사용해 쑨첸(孫潛)이라고 지을 정도로 강한 중국 해군을 주창하는 인물이다. 중국 해군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그는 지난 5월 말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4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을 중단하라’는 미·일의 협공에 “정당한 주권 행사”라고 맞섰다.

 그다음이 중국 북해함대 사령관을 지낸 톈중(田中·59)이다. 그는 지난 2011년 8월 4일 북·중 우호협력조약 50주년을 기념해 정허(鄭和)함 등 해군훈련함대를 이끌고 북한 원산항을 방문했던 인물이다.

또 다른 인물이 장웨이례(蔣偉烈·58) 중국 남해함대 사령관이다. 이들 모두 중국군 내에서도 소장파에 속하는 50년 이후 출생자다.

 이들 3명 모두 군부 내 시진핑 주석의 핵심 측근이라는 점이다. 시 주석이 인민해방군 지상군 30만 명을 감축하는 대신 그 국방비를 해군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말이 벌써 들려온다는 사실에 크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국방일보 2015.09.13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한국국방정책학회 이사]

독도본부 2015.09.21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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