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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년> 200년간 일본 침략 막은 '조선통신사 행렬'


 
2008년 8월 일본 시모노세키의 가장 큰 축제인 '바칸 마쓰리' 만찬장.

80여 명으로 구성된 조선통신사 행렬의 재현을 이끈 강남주 당시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이사장이 마이크를 들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선통신사가 왕래한 200여년은 한일 양국에 전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인접한 국가 가운데 이토록 오랜 기간 전쟁을 하지 않은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뭅니다. 진정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입니다."

이 순간에 만찬장을 가득 메운 축제 참석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양국 교류의 새로운 장을 연지 6년만에 자축하는 장면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조선통신사 행렬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계기로 190여년 만에 재현 형식으로 부활했다. 

조선통신사는 국왕 명의로 일본에 보낸 공식 외교사절로 1413년 태종 13년 때 처음 파견된 이래 모두 20 차례 이어졌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단절된 국교를 회복하려는 일본 에도막부의 요청으로 집중 교류가 이뤄졌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년간 12차례 파견됐다.

임진왜란 전에도 통신사가 8차례 파견됐다. 그러나 지금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통신사의 왕래로 평화체제를 구축한 조선통신사의 발자취에 더욱 큰 의미를 둔다.

조선통신사는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일본 막부의 답서를 받아오는 것이 주임무다. 한양에서 출발해 부산을 거쳐 도쿄까지 갔다 오는 데 반년 이상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이 기간에 조선통신사는 일본인의 환영을 받으며 현지 문인과 필담을 나누고 소통했다. 음악, 그림, 기예 등의 문화를 주고받은 친선교류의 통로 역할도 했다.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은 2002년 이후 한일관계가 극도로 냉각됐을 때도 민간교류의 마지막 보루의 기능을 했다. 

2013년 일본 쓰시마에서 도난된 불상 반환 문제로 일본 쪽 행사가 한번 취소됐다. 국내에서는 2010년과 2014년에 각각 천안함 폭침과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건너뛰었을 뿐이다.

양국 국민은 200년 전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을 통해 정치문제는 잠시 접어둔 채 교류하고 서로 이해하면서 신뢰를 쌓고 있다.

최근 부산문화재단과 일본에서 조선통신사 축제가 열리는 지자체 협의체인 연지(緣地) 연락협의회가 조선통신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함께 추진하는 것도 이런 밑바탕 덕에 가능하다.

◇ 조선통신사의 부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식민사관 등의 영향으로 국내에서는 조선통신사의 역사가 잊혔다. 반대로 일본에서는 재일교포 사학자를 중심으로 연구가 활발했다.

이미 1979년에 재일교포 신기수씨가 제작한 '에도시대의 조선통신사'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와 일본인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조선통신사의 의복과 음식 분야 논문까지 발표되는 등 연구 수준이 상당했다. 이는 1980년대부터 쓰시마, 시모노세키, 우시마도, 도쿄 등지에서 자체적으로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하게 된 계기가 됐다.

조선통신사 부활에는 전통문화를 연구한 한 학자의 노력이 컸다.

남해의 외딴섬을 돌며 한국 문화의 원형을 찾던 강남주 전 부경대 교수는 가까운 일본에서 우리 문화가 보존돼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쓰시마를 찾기 시작했다.

정부에 쓰시마 문화조사연구비를 신청해 1994년부터 한 달에 1∼2번꼴로 대마도를 오가며 연구하던 강 교수는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하는 축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강 교수는 "해운업을 하며 축제를 이끄는 마쓰바라 가즈유키씨가 조선통신사의 유래를 상세히 설명하며 양국의 문화발전과 교류를 위해 한국 특히 부산에서 축제가 열려야 한다고 강조해 부끄러웠다"고 회고했다. 

이후 관련 자료를 충분히 검토한 강 교수는 2000년 초에 유흥수 당시 국회의원(현 주일대사), 안상영 당시 부산시장 등과 저녁을 먹으며 조선통신사 축제 개최를 논의했다. 그해 여름에는 쓰시마에서 조선통신사 축제를 함께 관람한 뒤 본격 준비에 들어갔다.

◇ 해마다 풍성해지는 조선통신사 축제 

2001년 부경대 총장이 된 강남주 교수가 조선통신사 문화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부산시가 사업비를 대면서 그해 여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조선통신사 행렬재현 행사가 열렸다. 부산 바다축제의 해변 행진에 등장한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기념해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한 데 이어 쓰시마 조선통신사 축제에도 참여하면서 190여 년 전에 끊긴 역사를 이어나갔다.

이후 일본의 조선통신사 연고 도시에 무용팀과 공연팀을 파견하는 등 축제 규모도 늘렸다.

이러는 사이 국사편찬위원회가 보관 중인 1711년 조선통신사 행렬 그림으로 통신사를 인솔한 정사, 부사, 종사관은 물론 행렬 참가자의 복장과 순서 등을 철저하게 분석해 행렬 재현에 반영하는 등 고증작업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2006년에는 축제의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할 조선통신사학회가 창립돼 매년 학술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2010년에는 사단법인 형태의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와 부산문화재단의 업무를 통합해 더욱 안정적으로 축제를 해오고 있다.

지난 5월 열린 올해 조선통신사 축제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과 세계문화유산 한일 공동 등재 추진을 기념한 한일 합동 공연 '신통방통(信通方通)'이 열리는 등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다.

일본에서도 조선통신사 연고지 연락협의회를 만들어 쓰시마, 시모노세키, 도모노우라, 우시마도, 시즈오카, 하코네 등이 개별적으로 열었던 축제를 묶어 부산문화재단과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 조선통신사 여정은 '평화의 길' 

광복 70주년과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조선통신사 축제는 양국의 평화를 담보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국가간 교류였던 조선통신사는 현재 민간교류의 형태를 띠고 있어 오히려 더 자발적인 축제가 되고 있다." 조선통신사를 연구하며 학술 심포지엄에 줄곧 참여하는 한태문 부산대 교수의 말이다. 

그는 "양국 국민이 만나면서 상대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풀고 신뢰를 쌓고 있다"며 "한일간 갈등에도 10여 년간 축제가 꾸준히 계속돼온 이유"라고 설명했다.

조선통신사 축제의 산 증인인 강남주 부산문화재단 초대 대표는 "한일 양국이 동시에 추진하는 조선통신사 축제와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바로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마쓰바라 가즈유키 일본 조선통신사 연지(緣地)연락협의회 이사장은 "조선통신사만큼 한일 두 나라가 평화를 구축하기에 좋은 유산은 없는 것 같다"며 "진정한 신뢰 관계 속에서 탄탄하게 맺어진 파트너십은 삐걱거리는 한일간의 정치 문제에도 변함없으며 앞으로 두 나라의 평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호평했다.[연합뉴스 2015..06.29]

독도본부 2015.07.01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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