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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마 문제와 영토분쟁의 해결방법

NETIBNEWS 2012.09.12/13

하마구치 가즈히사(濱口和久)「진정한 보안론(本気の安保論)」


일본정책연구센터 연구원  하마구치 가즈히사(濱口和久)


<일본인 88명이 다케시마로 본적을 옮기다>
 시마네현∙다케시마로 본적을 옮긴 일본인이 88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요미우리신문 8월 25일자).

 필자도「일본정부의 외교자세는 소극적. 영토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없을까」생각해 2008년 3월 11일에 가족 4명이 다케시마로 본적을 옮겼다.

 정식으로는 다케시마의 본적지번은 시마네현 오키군 고카무라 다케시마관유 무번지(島根県隠岐郡五箇村竹島官有無番地/ 현재는 시정촌합병(市町村合併)으로 고카무라에서 오키노시마쵸로 바뀜)가 된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저서인 『누가 일본의 영토를 지키는가?(だれが日本の領土を守るのか?)』(다치바나출판=たちばな出版)를 참조해주십시오.

<한국에 의한 과거의 만행을 일본인은 알아야 한다>
 1952년 2월 4일에 이승만라인 주변에서 조업했던 제1대방호(第一大邦丸)가 나포되고 어로장이 사실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후도 한일기본조약이 서명되기까지인 13년간 이승만라인을 방패로 한국은 일본어선 328척을 나포하고 3,929명의 일본인 어부를 억류한다. 그 과정에서 44명의 일본인 어부가 죽거나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억류한 일본인 어부를 인질로 잡고 한일국교정상화 교섭을 유리하게 끌고나가기 위한 외교카드로 이용해왔다.

 일본정부는 일본인 억류자 반환을 조건으로 「상습 범죄자, 혹은 중대 범죄자로 수감되어 있는 472명의 재일한국인 및 조선인을 수용소에서 방면해 재류특별허가를 부여」하는 굴욕적인 한국정부의 요구까지 들어주어야만 했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이와 같은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한다. 다케시마 문제를 생각하는데 있어 한국인의 만행은 기억해두어야만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2005년에 한국정부는 일본인의 다케시마 상륙을 대비해 「위기대응지침」을 책정하고 있다.

 (1) 일본함선을 확인하는 즉시 해양경찰경비함이 긴급출동하고 (다케시마)상륙 시에는 신       변을 구속한다.
 (2) 대형선이나 자위함이 접근할 경우, 한국군에 의한 대응으로 전환한다.

 이 같은 태세를 취하는 한국과 진정한 한일우호 따윈 절대로 불가능한다.

<국제사법재판소(ICJ)로의 제소>
 일본정부는 8월 21일, 이대통령의 다케시마 불법상륙으로 다케시마 영유권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할 것을 한국정부에 정식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영토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한국정부는 회부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정부는 과거 1954년에 1967년의 두 차례에 걸친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제안했지만 모두 한국정부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번에 일본정부는 한국정부가 회부를 거부할 경우에도 단독으로 제소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다케시마 문제의 존재를 어필할 생각이라고 한다.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앞으로도 한국정부가 회부에 동의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되는 가운데, 2008년 5월에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영유권을 주장했던 페드라브랑카(: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두 국가 사이에 위치한 길이 137m, 폭 60m인 조그만 무인도인 페드라 브랑카의 영유권을 놓고 1980년부터 28년간 벌인 분쟁이다. 페드라 브랑카(Pedra Branca, 말레이시아명으로는 플라우 바투 푸테)는 백암(白巖, white rock)이라는 뜻이다. 말레이시아는 태고 때부터 조호르(Johir) 왕국의 영유권에 있었다는 역사적 문헌 등을 근거로 자국 영토임을 주장했고, 싱가포르는 무주지였던 이 섬에 대해 영국 식민지 독립 이후 실효 지배를 계속해왔다는 점을 내세우며 맞서 결국 양국은 ICJ(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ICJ는 1953년 말레이시아 정부(당시 조호르 왕국)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서신을 보낸 이래 1979년까지 단 한번도 싱가포르의 실효 지배에 반박하지 않았으며, 이에 비해 싱가포르는 페드라 브랑카 주변해역에서 해난 및 조난 선박 사건을 조사ㆍ보고해오고 있었고 싱가포르 정부 발간물 등에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기술하고 있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2008년 5월 23일 싱가포르의 영토임을 인정했다. <출처: 네이버지식백과>)의 귀속문제를 둘러싼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페드라브랑카섬의 영유권은 본래 말레이시가가 주장했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130년 전부터 이 섬의 호스버그등대(Horsburgh Lighthouse)를  관리하고 있었고 이에 대해 말레이시아는 아무런 제기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암묵적으로 영유권이 이전되었다고 싱가로르는 주장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최종적으로 「1980년까지 페트라브랑카섬의 영유권은 싱가포르로 이전되었다고 간주, 싱가포르에 귀속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은 누가 보아도 명백한 조약을 토대로 하지 않는 한, 「발견」과 「역사(문헌을 포함)」에 유래한 주권은 기각되며 「장기에 걸친」 계속적인 실효지배와 통치, 관리의 증거축적이 중시됨을 의미한다.

 불법점거하고 있다고는 해도 문제없이 반세기~1세기 동안 실효 지배할 경우 자국영토가 된다는 점을 국제사법재판소가 보여준 것이다.

 이 판단에 따를 경우, 다케시마는 한국의 영토가 되고 북방영토는 러시아의 영토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설령 미래에 한국정부가 회부에 동의해 국제사법재판소가 「다케시마는 일본영토」로 용인했다고 해도 판결에 강제력도 벌칙도 없기 때문에 한국이 다케시마를 일본에 반환할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 체결 때, 다케시마의 영유권 문제는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을 도모하고 이를 통한 해결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양국 정부가 합의하는 절차에 따라 조정에 따른 해결을 도모하는 것으로 한다(外交上の経路を通じて解決を図り、これにより解決できない場合には、両国政府が合意する手続きに従い、調停による解決を図るものとする)」고 규정되어 해결이 보류되었다.

 이때 보류하지 않고 일본정부가 다케시마 영유를 마지막까지 주장해 해결을 도모했다면 현재와 같은 한국에 의한 불법점거가 계속되는 상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재 미국은 다케시마 문제에 개입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전후 한일관계를 생각하는데 있어 다케시마 문제는 미국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보다도 미국을 제3자기관으로 하는 조정역할로 삼아 해결을 도모하는 방법을 일본정부는 진지하게 검토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민주당정권 탄생 후의 미일관계의 뒤틀림을 조속히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이 시급하다 하겠다.

 

독도본부 2012. 12. 07.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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