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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네현과 다케시마 문제

「센카쿠문제」대응 지침으로 삼아라

 시마네현 다케시마문제연구 고문 후지이 겐지(藤井賢二)

 전후(戦後) 다케시마 문제와 그와 관련한 어업문제에 관해 일본정부는 일관되게 시마네현에 냉담했다.

 1954(쇼와29)년 5월 1일, 구미(久見)어업협동조합이 시마네현어업단속선인 「시마카제(島風)」로 어업권을 지닌 다케시마에서의 시험조업을 실시했다. 이 시험조업이 오키(隠岐) 어업자가 다케시마에서 조업한 마지막 날이 되었다. 같은 해 8월에 해상보안부 순시선인「오키(おき)」가 한국의 총격을 받아 대피한 것처럼 한국이 일본인의 다케시마 상륙을 폭력으로 저지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자국의 영토를 점거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제의한 이상의 효과적인 수단을 취하지 않았다.

 1965년 6월, 한일조약이 체결되고 한일 국교가 수립되었다. 한일회담(국교정상화교섭)에서 일본정부는 당초에 「다케시마 문제해결 없이는 국교정상화도 없다」는 자세였다. 그러나 다케시마 문제는 한일회담의 의제가 아니라는 한국의 강경한 주장 앞에서 그 자세를 관철할 수 없었다. 같은 해 10월에 도쿄로 올라온 다나베(田部) 시마네현 지사에게 사토(佐藤) 총리는 「정부 입장에서 다케시마는 일본의 영토라는 종래의 방침으로 앞으로도 한국과 절충해나갈 생각이지만, 다케시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그 외의 한일 현안을 추진하지 않는 건 불가능한 상황으로 이 점을 시마네에서도 이해해주길 바란다(政府としては竹島は日本の領土であるという従来の方針で今後も韓国側と折衝を続ける考えだが、竹島問題が解決しない限り、そのほかの日韓懸案を進めないというわけにはいかない事情なので、この点を地元でも理解してほしい)」고 말했다.

 한국의 다케시마 불법점거를 보류하고 한일 국교가 수립됐을 때에 어떤 국제법학자는 다름과 같이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실제적인 문제로 다케시마를 우리나라(일본)가 되찾을 전망은 거의 없어졌다 하겠다. 일본 해상에 떠 있는 이 작은 암초의 존재는 결국-지역적 서클 밖에서는-일반 사람들의 기억과 관심에서 사라질 때까지 멀어지게 될지도 모른다)憚(はばか)らずにいえば、実際問題として竹島をわが国の手に取り戻す見込みはほとんどなくなったということである。日本海上にうかぶこの小さな岩礁の存在は、やがて―地域的サークルの外では―一般の人々の記憶と関心から消え去るまで遠ざかっていくことになるかもしれない)」(미나가와 다케시(皆川洸)『법률시보(法律時報)』1965년 9월호). 그 후의 다케시마를 둘러싼 상황은 2005년에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할 때가지 이 예측대로 진행되었다. 일본정부는 냉전의 최전선에 서서 한국을 배려해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이 다케시마를 미해결 상태로 방치해왔다.

 쇼와40년대(1965~1974년을 말함) 후반에 심해에서의 게잡이와 앞바다에서의 오징어잡이가 왕성해져 다케시마 주변해역은 산인(山陰)지역 어업자들에게 좋은 어장이 되었다. 그런 중에 1978년 4월 30일에 한국은 영해12해리를 선언해 다케시마에도 적용, 5월 9일에는 주변에서 조업 중이던 시마네현 등의 오징어잡이 어선을 내쫓았다. 시마네현 어업자는 돗토리현과도 공동으로 일본정부에 대책을 요망했다. 그러나 그 반응은 둔했다. 「일본정부는 우리들에게 해 준 건 하나도 없다. 이 진정으로 조업재개 전망에 대한 심증만은 가지고 돌아가고 싶었는데 확실한 게 없다(日本政府は何もわれわれにしてくれない。この陳情で操業再開メドの心証だけは持って帰りたいのに、もう一つ要領を得ない)」며 상경한 시마네현 어업자는 불만을 표했다. 이렇게 해서 산인지역 어업자들은 다케시마 주변수역을 잃고 말았다.

 올해 8월 10일의 이명박 대통령의 다케시마 상륙과 그 후의 한일 대립은 다케시마 문제를 시마네현이라는 일개 지역의 문제에서 일본의 과제로 순식간에 끌어올렸다. 노다 총리는 8월 24일의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인 낙도 주권을 확보하는 건 해양국가 일본의 장대한 프런티어를 지키는 일입니다(我が国固有の領土である離島の主権を確保するということは、海洋国家日本の壮大なフロンティアを守るということにほかなりません)」라며 다케시마 이름을 들어 결의를 표명했다. 세계적인 해양권익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고양은 다케시마 문제 방치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한일회담 최종국면에서 일본은 다케시마 지배를 이 이상 강화하지 않겠다는 한국의 약속을 받고 다케시마 문제를 보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은 이후 강경자세를 보이지 않아 한국의 다케시마지배 강화를 용납했으며, 한편으로는 중국의 격렬한 반발 앞에 일본은 센카쿠열도에 대한 지배강화를 주저하고 있다. 다케시마 문제와 센카쿠열도 문제는 연관되어 있어 시마네현과 다케시마 문제의 관련경위를 아는 일은 일본의 미래에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

 후지이 겐지(藤井賢二) 효고현(兵庫県) 히메지(姫路)시립 히메지고등학교 교사. 시마네현 요시카쵸(吉賀町) 출신. 근현대 북일・한일관계사 전문. 시마네현 제2기 다케시마문제연구회 위원을 역임. 현재는 시마네현 다케시마문제연구고문.(산음중앙신보 2012.10.20)

 

 

독도본부 2012. 10. 23.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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