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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울릉도에서 철수당한 시마네현민에 대해            

Web다케시마문제연구소 연구스태프, 연구협력원으로부터의 보고

 서두

   1882년 조선에서 민중들이 일본공사관을 습격한 것을 사죄하기 위해 수신사로 박영효가 일본을 방문했다. 그는 사죄 후, 울릉도로 벌목을 위해 많은 일본인이 진출해있다고 항의했다. 분명 1883년 야마구치현(山口県)의 요코타니 사이치(横谷佐一)라는 사람이 쓴 「송도경황서(松島景況書)」(외무성 외교사료관 『조선국 울릉도 도항금지를 어긴 일본인 송환 처분 건(朝鮮国蔚陵島へ犯禁渡航之日本人引戻処分一件)』수록)에는 약400명의 일본인이 8개의 조직으로 섬(울릉도)에서 벌목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5개 조직이 야마구치현 세력이라 기록하고 있다.

 메이지정부는 각 부(府)와 현(県)에 1883년 3월 31일자 내무경인 야마다 아키요시(山田顕義)의 이름으로 「북위37도30분 서경8도57분에 위치한 일본에서 마츠시마라 불리는 일명 다케시마, 조선에서 울릉도라 불리는(후략)(北緯三十七度三十分西経八度五十七分ニ位スル日本称松嶋一名竹島、朝鮮称蔚陵嶋ノ義ハ従前彼我政府議定ノ義モ有之日本人民妄ニ渡海上陸不相成候條心得違無之様其管下ヘ諭達可致此旨及内達候也)」이라 훈령했다. 시마네현에서는 당시 현령이었던 사카이지로(境二郎)가 같은 해 4월 14일자로 (시마네)현의 각 지역에 (이를)포고하고 있다. 메이지정부는 또한 구체적인 상황파악을 야마구치현, 후쿠오카현 등에 명했다. 야마구치현 관계에 대해서는 야마구치현문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방대한 관계 사료를 기쿄 이쿠토(木京睦人) 씨가 정리해 「메이지16년 [울릉도1건](明治十六年『蔚陵島一件』)」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 2002년 『야마구치현 지방사 연구(山口県地方史研究)』에 발표되었다.

 결국 메이지정부는 정확한 정보파악이 어렵다는 걸 알자, 9월부터 관선(官船)을 파견하여 일본인 전원 강제귀국을 검토하기 시작, 9월 19일에는 외무경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가 조선의 원산주재 일본영사인 소에다 세츠(副田節)에게 조선정부에 관선을 파견키로 결정했다는 통지를 하도록 명하고 있다.

 이번에 외교사료관이 소장하고 있는「조선국 울릉도로의 도항금지를 범한 일본인 송환 처분 건(朝鮮国蔚陵島ヘ犯禁渡航之日本人引戻処分一件)」이라는 사료 중에 정부가 준비한 공동운수회사 기선인 「에치고마루(越後丸)」로 울릉도로 건너간 정부 책임자인 내무성 서기관인 히가키 나오에(桧垣直枝)의 『울릉도출장복명서(蔚陵島出張復命書)』(이하『복명서(復命書)』라 칭함)를 발견하였기에 이 사건의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1.울릉도에서의 강제귀국 상황 

 『복명서(復命書)』에 따르면 히가키 나오에(桧垣直枝)는 수행원을 내무성에서 2명, 외무성에서 1명, 경찰관계자 26명과 1883년 9월 27일에 시나가와를 출발해 29일에 고베항, 10월 2일에 아카마가세키(赤間関: 시모노세키의 별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울릉도를 잘 아는 여러 명의 사람을 안내인으로 고용, 또한 울릉도로 건너가 있는 일본인에게 귀국을 설득할 방법을 의논했다. 10월 6일 정오, 아카마가세키(赤間関)를 출항해 다음날 7일 오전 9시 울릉도 동북해안인 아리쿠사(阿陸沙, 다른 메이지시기의 지도는 사동(沙洞)이란 글자를 쓰고 있다. 도동(道洞)에 인접한 항구다.)에 도착했다. 가까운 나카타니(中谷)라는 지명의 일본인 거주지역에 있던 약40명의 사람을 모아 귀국을 설득했지만 그들은 벌채가 끝난 목재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섬에 있던 조선인 유생이라는 배충은(裴忠隠)이 찾아왔기에 섬을 방문한 취지를 전했다. 섬의 장(島長)인 전석규(全錫奎)는 병중이라 했지만 후일 배로 찾아왔기에 응대할 수 있었다. 벌채사업을 펼쳤던 아사히구미(旭組) 등 6개 조(組)의 조장도 찾아왔기에 수하에게 전달해 귀국에 협력할 것을 의뢰했다. 8일이 되어 폭풍우가 들이닥쳐 일단 원산진(元山津)으로 피난했다. 14일이 되어 재차 울릉도 아리쿠사(阿陸沙)로 되돌아가 모여 있던 일본인을 승선시켰다. 총인원은 255명이었다. 기쿄 이쿠토(木京睦人) 씨의 논문에는 총 244명으로 되어 있는데 카운트한 시기가 다를 가능성이 있다). 이 섬에 사는 조선인은 대략 60명으로 일본인의 은혜를 입어 생계를 꾸미고 있는 자도 많아 일본인의 귀국을 듣자 걱정스러운 낯으로 슬픈 마음을 감추지 않았으며 마치 형제나 친한 친구와 이별이라도 하듯, 어떤 이는 행장을 끌어안고, 어떤 이는 짐을 짊어지고 해안까지 배웅 나왔다. 일본인도 이들의 궁핍한 사정을 알아채고 은밀히 쌀 등의 꾸러미를 직접 건넸다. 도의 장(島長)인 전석규는 일본인이 벌목한 목재를 도벌로 보지 않고 본인의 판단으로 본국(일본)으로 싣고 귀국할 것을 허가했다. 일본 측도 폭풍우 등의 긴급 시에 이용하도록 백미 4말2되(白米四斗二升), 25가마니(俵廿五包)를 건넸다. 14일 오후 5시30분 울릉도를 출발해 다음날 15일 오후 2시에 아카마가세키에 도착했다. 이상이 히가키 나오에의 복명서에 대략적인 개요로, 이 외에 섬의 장(島長), 유생과의 응대 및 접대내용, 울릉도의 지도, 현별(県別) 성명의 열거한 기록 등도 첨부되어 있다.


2.귀국당한 시마네현민에 대해     
            
 귀국한 일본인은 현별로 에히메현(愛媛県)이 14명, 히로시마현(広島県)이 21명, 시마네현(島根県)이 22명, 후쿠오카현(福岡県)이 34명, 야마구치현(山口県)이 134명, 나가사키현(長崎県)이 9명, 가고시마현(鹿児島県)이 4명, 오이타현(大分県)이 3명, 돗토리현(鳥取県)이 1명으로, 성명, 연령, 신분(평민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부는 토족도 있다)이 기록되어 있지만, 히가키의 복명서에 쓰인 약255명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시마네현민 22명에 대해서는 성명 일람에 22명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또한 각자가 주소와 성명을 기재 신고한 서류도 있지만 여기에는 20명에 대해서만 남아 있다. 프라이버시를 배려해 개인의 이름은 생략하고 주소와 연령을 살펴보면, 나가군(那賀郡) 우시로지무라(後地村) 34세, 20세, 미스미무라(三隅村) 33세, 하마다쵸(浜田町) 22세, 18세, 오오치군(邑智郡) 와타리무라(渡村) 28세, 타니쥬고무라(谷住郷村) 28세, 17세, 가메타니무라(亀谷村) 29세, 가미가와도무라(上川戸村) 23세, 츠가무라(都賀村) 31세, 타쿠보무라(田窪村) 26세, 미노군(美濃郡) 니시히라바라무라(西平原村) 34세, 18세, 니마군(邇摩郡) 우마지무라(馬路村) 29세, 아노군(安濃郡) 가와이무라(川合村) 28세, 오오타무라(大田村) 25세, 마쓰에시(松江市) 신자이모쿠마치(新材木町) 26세, 19세이다. 신고하지 않은 2명 가운데 1명은 병사(病死), 1명은 경찰이 조사 중에 실종된 것으로 되어있다.

 상기로 알 수 있는 건 마쓰에시(松江市)의 2명을 제외하면 이와미(石見)지방의 젊은이들만 있다. 8조의 벌목그룹 중 5조가 이와미지방에 인접한 야마구치현 관계자로 조직되어 있는 것을 바탕으로 지연으로 고용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1892년 이후가 되면 일본인으로 울릉도에서 최초로 겨울을 지낸 것으로 사료되는 와키타 쇼타로(脇田庄太郎)를 비롯해 시마네현민으로 울릉도로 건너간 건 오키지역 사람들 중심으로 변화되어간다.
           

사진1. 1883(메이지16)년 현령인 사카이지로(境二郎)가 현에 속한 각 지역에 포고한 울릉도도항금지에 대한 통달 (이이난쵸=飯南町 소장)

 

사진2. 「조선국 울릉도로의 도항금지를 범한 일본인 송환 처분 건(朝鮮国蔚陵島へ犯禁渡航之日本人引戻処分一件)」(외무성 외교사료관 소장)

 

사진3. 히가키 나오에(桧垣直枝)의 『울릉도출장복명서(蔚陵島出張復命書)』
  (외무성 외교사료관 소장)

 

사진4. 『울릉도출장복명서(蔚陵島出張復命書)』에 첨부되어있는 「울릉도도(蔚陵島図)」
도방청(都房廰)이 도동(道洞) (외무성 외교사료관 소장)
http://www.pref.shimane.lg.jp/soumu/web-takeshima/takeshima04/takeshima04-1/takeshima-04240301.html

Web다케시마문제연구소 2012.03.16

독도본부 2012 .04. 13.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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