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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광무 4년 칙령상 우리 땅'

"독도는 광무 4년 칙령상 우리 땅"
동국대 임영정교수 특별강연

독도(獨島)는 광무(光武)4년(1900년) 10월27일 관보에 실린 칙령 제41호 제2조에 근거해 볼때 우리 영토임이 분명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동국대 임영정(역사교육과)교수는 국립제주박물관이 19세기말 제주의 사정업무를 담당한 '察理使 李奎遠'전 기념으로 17일 마련한 '이규원 검찰사와 독도의 인지'라는 특별강연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임 교수에 따르면 이 칙령은 일본이 주장하는 명치 38년(1905년) 1월28일 죽도(竹島)의 영토 편입에 관한 각의(閣議) 결정에 의한 국가로서의 영유 의사보다 5년 앞섰다.

이 칙령은 '군청(郡廳)의 위치는 대하동(台霞洞)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 전도(全島)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할 사(事)'로 표기했고 석도가 독도(獨島)임은 이미 알려진 일이라고 임 교수는 밝혔다.

임 교수는 석도(石島)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돌섬'이 되는데 당시 울릉도에 많이 거주했던 전남 고흥지방 사람들의 방언으로 '돌(石)'을 '독'이라고 불러 당연히 석도(石島)가 독도(獨島)라는 주장도 발표됐다고 소개했다.

또 독도가 울릉군의 부속도서로 편입되는데는 고종 18년(1881년)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된 이규원이 이듬해 4월30일부터 5월8일까지 울릉도를 탐사한후 제출한 보고서와 1900년 6월중순 우용정(禹用鼎) 울릉도 시찰위원이 제출한 청의서(請議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그는 밝혔다.

이규원은 고종의 명에 따라 울릉도에 상륙, 5월8일까지 섬의 구석구석을 답사했고 섬을 배편으로 일주한데 이어 성인봉 정상까지 올라 송죽도(松竹島).송도(松島).죽도(竹島)를 찾고자 했다고 임 교수는 전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이도 상거불원 풍일청명 칙가 망견'(二島 相距不遠風日淸明 則可 望見 두섬이 멀지않아 바람 불고 청명한 날 볼 수 있다)'이라고 기록돼 독도가 울릉도에서 볼 수 있는 시기가 대략 11월로 편서풍이 심하게 불어 해무가사라진 날 오후에 울릉도의 고지대에서 독도가 아련하게 보인다'는 점과 일치한다고임 교수는 강조했다.

한편 이규원 검찰사는 조선 말기 제주도 찰리사와 군무아무대신도 역임했는데 제주도와 조선의 영토지키기에 노력했고 독도에 대한 인지의 폭도 넓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연합뉴스) 이기승 기자  2004.9.18.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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