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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구시 〜일한의 가시, 다케시마(독도)문제를 생각하다〜

제26회 「동북아역사재단」주최 「동해 독도 고지도전(東海独島古地図展)」에 대해  

Web다케시마문제연구소 2010.04.08


   최근 3월 2일부터 9일에 걸쳐 한국정부의 연구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주최로「동해 독도 고지도전(東海独島古地図展)」이 한국의 국회도서관 2층에서 개최되었다. 전시장에는 사진패널만이 있었고 실물 고지도는 전시되고 있지 않아 양두구육(羊頭狗肉;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①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 ②겉과 속이 서로 다름 ③말과 행동(行動)이 일치(一致)하지 않음을 뜻함.<출처: 네이버사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전시장에서 배부됐던 팸플릿과 전시장에 있는 설명문에 따르면, 이번 고지도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동해의 고지도에서 주목되는 건 독일, 영국, 러시아 등에서 제작된 서양의 지도에서는 한국의 고지도보다도 이른 시기에 동해 해역에 동해라는 지명이 표기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서양에서는 동해 지명이 유라시아대륙의 동쪽이라는 의미에서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케시마(독도)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는「과거에 독도를 우산도(于山島), 삼봉도(三峯島), 가지도(可支島), 석도(石島) 등으로 불렀」고, 「서양의 고지도에는 Tchian-chan-tao;{우산국(독도의 옛 지명)의 중국식 발음} , 리앙쿠르바위(Liancout Rocks), 호넷바위(Hormet Rocks), 메넬라이-올리브차(Menalai-Olivutsa) 등의 명칭으로 표기되」어, 일본해(日本海)는 동해(東海)라는 표기가 올바르며, 다케시마(한국명, 독도)는 역사적으로 한국령이었다, 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의 「동해 독도 고지도전」에서도 다케시마(독도)를 한국령이라 하고, 일본해(日本海)를 동해(東海)라 할 수 있는 논거는 전시되지 않았다. 팸플릿 등에서는 「동해 해역에 동해라는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고 하고 있지만, 조선시대를 통해 동해에 해당하는 해역은 황해 및 발해로, 조선반도 동쪽 연안(東岸)의 연해부를 가리키고 있으며, 현재의 일본해(동해)와는 중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지도전을 기획한「동북아역사재단」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동해에 대한「동북아역사재단」의 이해는 팸플릿에 기재된 설명문을 통해 판단할 수 있다. 팸플릿에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増東国輿地勝覧)』(1531년)의 「팔도총도(八道総図)」를 들며 아래와 같이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팔도총도는『신증동국여지승람』의 최초로 수록되어 있는 조선전도(朝鮮全図)이다. 국가의 기밀을 지키기 위해 누구나 알고 있는 중요한 산과 하천, 섬, 도로와 바다의 명칭 등, 간단한 정보만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팔도총도」에 대한 이 설명문은 문헌비판을 등한시한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발문에는「총도는 즉 사전(祀典;제사(祭祀)를 지내는 예전(禮典) )이 실린 곳(総図は則ち祀典載す所)」이라 기록되어, 「팔도총도」에는 국가가 모시는 자연 신들의 대상이 그려져 있다, 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팔도총도」의 동해(東海)는 조선반도 동쪽 연안(東岸)의 해도(海濤)를 모시는 신사(神祠)의 소재를 표시하고 있으며, 바다의 명칭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마찬가지로『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삽입된 「강원도도(江原道図)」등에서도 원양(遠洋)부분에 대해서는 「동저대해(東抵大海)」(동, 대해에 이르다), 「동북저대해(東北抵大海)」(동북, 대해에 이르다)고 명기하고 대해(大海)라 하고, 연해부(沿海部)와는 명확히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본해(동해)의 대부분은 대해(大海)로 인식되고 있었다 하겠다.

  게다가『사전(祀典)』으로 규정된 동해(東海)는 고려시대에 편찬된『삼국사기』(「잡지(雑志)」)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통틀어 조선반도 동쪽 연안의 연해부를 가리키고 있다. 이를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팔도총도」에 동해(東海)라는 글자가 있어, 현재의 감각의로 일본해(日本海)라 바꿔 읽고, 일본해를 동해로 칭하는 증거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해를 동해로 호칭하는 게 일반적이게 된 건 근대 이후의 일로, 조선시대까지의 동해는 조선반도 동쪽 연안의 연해부와 황해와 발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해를 일본해로까지 확대해석하는 예는 「A Map of Marco Polo's Voyages」의 해설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지도는 영국의 에마뉴엘 보웬(:http://blog.naver.com/correctasia?Redirect=Log&logNo=50082990092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 참조.)이 1744년에 제작한 일본해 부분에 「EASTAN SEA」라 되어 있어 팸플릿에서는 서양사회가 일본해를 동해로 한 증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동해는 조선반도 동쪽 연안의 연해부를 가리키고 있으며 일본해에 해당하는 「EASTAN SEA」와는 중복되지 않는다. 게다가「EASTAN SEA」는 「A Map of Marco Polo's Voyages」에 기재되어 있는 점을 보더라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별명, 「동방기행」・「마르코폴로여행기」)을 모방해 「동방의 바다(東方の海)」라고 해석하는 편이 맞다.

  이를 팸플릿과 전시장의 설명문에서는 「동해의 고지도에서 주목되는 건 독일, 영국, 러시아 등에서 제작된 서양지도에서는 한국의 고지도보다도 이른 시기에 동해 해역에 동해라는 지명이 표기되었다는 점이다」라고 하고 있는데 그런 사실은 없다. 서양지도에서는 해당 해역을 「일본해(日本海)」, 「고려해(高麗海)」, 「조선해(朝鮮海)」라고 하는 게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의 「동해 독도 고지도전」은 일본해를 동해로 바꾸어야 한다는 한국 측의 저의와는 달리, 한국 측이 주장하는 동해가 일본해와 중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증해버리고 만 게 된다. 거짓 역사를 날조해 국내외를 기만하는 건 일한관계를 오히려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이런 종류의 정치적 선전은 한국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역사에 오점을 남기기는 해도, 좋은 결과를 후세에 남기지는 못한다.

  이는 1877년에 일본육군참모국이 제작한 「대일본전도(大日本全図)」를 전시하고, 현재의 다케시마(독도)가 그려져 있지 않은 사실에서 「1905년 이전에도 일본이 다케시마(독도)를 영유하고 있었다는 일본정부의 주장은 허위다」라고 하는 것도 후술하는 것과 같이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궤변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역사문제로서의 다케시마(독도)문제를 논할 때는 다케시마(독도)의 역사적 권원이 일한 어느 쪽에 속하는지를 명확히 하는 게 필요하다. 이에 「동해 독도 고지도전」의 팸플릿에서는 과거에 독도를 우산도(于山島), 삼봉도(三峯島), 가지도(可支島), 석도(石島) 등으로 불렀」고, 「서양의 고지도에는 Tchian-chan-tao{:우산국(독도의 옛 지명)의 중국식 발음}, 리앙쿠르바위(Liancout Rocks), 호넷바위(Hormet Rocks), 메넬라이-올리브차(Menalai-Olivutsa) 등의 명칭으로 표기되」어 있다며, 마치 역사적 권원이 존재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안에 다케시마(독도)가 한국령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한국 측에서는 현재의 다케시마(독도)를 우산도(于山島), 삼봉도(三峯島), 가지도(可支島), 석도(石島) 등으로 불렀다」고 하지만, 이 주장이 사실무근이라는 건 이미 필자의 저서인 「독도호칭고(独島呼称考)」에서 실증을 마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1905(메이지38)년의 다케시마(독도)에 대한 시마네현 편입 이전에 한국 측이 다케시마(독도)를 영유했었던 역사적 사실을 실증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한국 측이 일본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런데도 「동해 독도 고지도전」까지 개최해 「1905년 이전에도 일본이 다케시마(독도)를 영유했었다는 일본정부의 주장은 허위다」라고 하는 건 다케시마(독도)문제의 역사적 경위를 이해하고 있지 않은 증거라 하겠다.

  다케시마(독도)문제의 발단은 1952년 1월 18일, 한국정부가 공해상에 「이승만라인」을 설정하고 다케시마(독도)를 그 안에 포함시킨 것에 있다. 그 후, 1960년대까지 양국정부는 각서를 교환하고 형식적인 논쟁을 되풀이하지만 한국 측은 「일한 간에 영토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칠 뿐으로, 다케시마(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령이었다는 증명은 하지 못했다. 일본 측이 한국 측에 의한 1954년의 다케시마(독도)점거를 불법 점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중에 한국 측의 다케시마(독도)연구는 「독도는 우리 영토」라는 전제로 추진되어, 실증능력이 없는 문헌과 고지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는 다케시마(독도)를 한국령으로 한 증거로 삼아왔다. 이번의 「동해 독도 고지도전」도 그 범주에 속하고 있어, 이런 종류의 행사가 계속 개최되는 배경에는 종래의 일한 양국의 다케시마(독도)논쟁이 변칙적이었다는 것에 기인한다.

  역사적으로 보아 다케시마(독도)가 한국령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이미 실증되었지만, 현재 다케시마(독도)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연구에는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문제연구회와 일본정부(외무성)의 2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다케시마(독도) 문제의 논점정리를 한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문제연구회에서는 1905(메이지38)년, 메이지정부가 무주지였던 리앙쿠르암초를 다케시마(독도)라 명명하고, 국제법에 준거해 일본령에 편입한 사실을 근거로 다케시마(독도)를 일본령을 삼았다. 이에 대해 외무성에서는 이제까지의 일한 양국의 각서 교환에 의한 논쟁의 경위를 바탕으로 다케시마(독도)는 에도시대부터 일본령이었다고 해왔던 것이다.

  이에 어떻게 해서든 일본 측의 주장을 논파하고자 하는 한국 측은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문제연구회의 견해를 무시하고 다케시마(독도)는 에도시대부터 일본령이었다는 외무성의 견해를 문제로 삼은 것이다. 이번에 그 논거로 삼은 것이 일본육군참모국이 1877년에 제작한 「대일본전도(大日本全図)」이다. 거기에는 현재의 다케시마(독도)가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을 구실로 「1905년 이전에도 일본이 다케시마(독도)를 영유했다는 일본정부의 주장은 허위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1905년에 일본령이 된 다케시마(독도)가 1905년 이전에 제작된 일본지도에 존재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이 「대일본전도(大日本全図)」와 유사한 지도를 아무리 수집해도 다케시마(독도)가 한국령이었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다케시마(독도)가 한국령이라는 실증이 불가능한 한국 측이 「일본정부의 주장은 허위다」라고 하는 건 다케시마(독도) 불법점거를 정당화하기 위한 선전공작에 불과하다. 허위 주장이라면 「일본정부의 주장은 허위다」라는 한국 측이야말로 허위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팸플릿에서는 다케시마(독도)는「서양의 고지도에는 Tchian-chan-tao, 리앙쿠르바위(Liancout Rocks), 호넷바위(Hormet Rocks), 메넬라이-올리브차(Menalai-Olivutsa) 등의 명칭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한국 측의 기만이 숨겨져있다. 다케시마(독도)를「리앙쿠르암초(Liancout Rocks)」라 부른 건 1849년, 프랑스 포경선인 리앙쿠르호가 발견한 것에 유래하며, 「호넷바위(Hormet Rocks)」는 1855년, 영국의 군함인 호넷호에 의해 확인되어 해도에 기록된 것에 기인한다. 「메넬라이-올리브차(MeneliaorOlivutsa)」도 러시아의 군함인 팔라다호가 1854년에 다케시마(독도)를 인지하고 「메넬라이-올리브차바위(Menalai and Olivutsa Rocks)」라 명명한 것이다. 따라서 서양의 고지도에 다케시마(독도)가 Liancout Rocks, Hormet Rocks, MeneliaorOlivutsa라 표기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문제는 「Tchian-chan-tao」(치산도=千山島의 중국발음)를 현재의 다케시마(독도)로 해도 좋은지 여부다. 서양지도에 등장하는 「Tchian-chan-tao」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増東国輿地勝覧)』의「팔도총도(八道総図)」 등에 유래하며, 올바르게는 우산도(于山島)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팔도총도」에 그려진 우산도는 울릉도와는 같은 섬이지만 이름이 다른 섬으로 일한 양국의 계쟁지인 다케시마(독도)와는 관계가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에 그려진 우산도는 울릉도와 조선반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인용된『태종실록(太宗実録)』의 기사 등에 의해 울릉도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건 「팔도총도」의 잘못된 지리적 지식이 서양지도에 답습되어 울릉도와 같은 섬이지만 이름이 다른 우산도(于山島)가 치산도(千山島/「Tchian-chan-tao」)로 전해진 것이다. 이번에 전시된 당빌의 「조선왕국전도(朝鮮王国全図)」(1737년)는 그 하나로 서양지도를 혼란시키는 원흉이 되고 있다.

  때문에『페리제독 일본원정기(ベルリ提督日本遠征記)』의 삽화화가로 저명한 빌헬름 하이네의 「일본해도(日本海図)」(1858년)에서는 다케시마(아르고노트섬, 소재불명의 섬)・마츠시마(松島/울릉도・다쥴레섬)・호넷바위(현재의 다케시마=독도)의 3섬과 조선반도 동해안 근처에는 울릉도를 의미하는 「Pan-ling-tao」와, 치산도=千山島에서 유래된「Tchian-chan-tao」의 2섬이 그려져 있다. 이는 페리제독의 『일본원정기』의 접이식 지도(1855년)도 마찬가지로 다쥴레섬(울릉도・별명 마츠시마=松島)과 울릉도를 의미하는 「Pan-ling-tao」의 2개의 울릉도가 그려져 있어, 당빌의 「조선왕국전도」의 지리적 이해가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이번의「동해 독도 고지도전」에서는 당빌의 「조선왕국전도」(1737년)에 그려진「Tchian-chan-tao」를 현재의 다케시마(독도)라 단정 짓고 있지만 이「Tchian-chan-tao」는「팔도총도」의 오류를 답습한 것으로 다케시마(독도)가 한국령이었다는 근거는 되지 않는다. 한국 측에서는 문헌비판을 게을리 한 채, 문헌과 고지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다케시마(독도)를 한국령이라 하지만 공정한 역사연구절차가 결여된 주장은 망언밖에 되지 않는다.

  요전 4월 1일, 영남대학교의 독도연구소가 공개한 「일러청한 명세신도(日露清韓明細新図)」도 한 예라 할 수 있다. 이 「일러청한 명세신도(日露清韓明細新図)」는 1903년에 제국육해측량부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여기에는 일본과 한국 사이에 경계선이 그어져, 한국 측에 다케시마(竹島)와 마츠시마(松島)가 그려져있다. 이에 대해 영남대학교의 독도연구소는 지도에는 「일본 측에서 칭하는 다케시마(竹島=울릉도)와 마츠시마(松島=독도)를 조선 경계에 속한다고 표기하고 있다」며, 독도연구소의 김화경 소장도 「일본 측은 스스로 국경선을 구분해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한 증거가 있는 상황에서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중지해야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러청한 명세신도(日露清韓明細新図)」에 그려진 다케시마(竹島)와 마츠시마(松島)는 그 경위에서 보아도 환상의 섬인 아르고노트섬을 의미하는 다케시마(竹島)와 울릉도에 해당하는 마츠시마(松島)가 올바르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1883(메이지16)년 전후부터 울릉도를 마츠시마(松島)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먼 근거를 찾아보면, 시볼트가 서양에 전한 「일본도(日本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볼트의 「일본도(日本図)」(1840년)에서는 소재불명의 아르고노트섬(동경129도50분)을 다케시마(竹島)로 표기하고, 동경130도56분의 울릉도(다쥴레섬)을 마츠시마(松島)로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볼트의 「일본도」이후에 서양의 해도와 지도에는 소재불명의 다케시마(竹=아르고노트섬)와, 마츠시마(松島=다쥴레섬)라 불리게 된 울릉도가 그려졌으며, 일본에서도 이를 답습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측에 불법점거당하고 있는 다케시마(竹島=독도)는 동경131도55분에 위치한다. 시볼트의 「일본도(日本図)」가 전한 동경129도50분의 다케시마(竹島)와 동경130도56분의 울릉도(마츠시마=松島)와는 당연히 관계가 없다 하겠다.

  따라서 1903년에 제국육해측량부(帝国陸海測量部)가 편찬한「일러청한 명세신도(日露清韓明細新図)」의 다케시마(竹島)와 마츠시마(松島)는 경도와 위도에서 보아도 아르고노트섬과 다쥴레섬이다. 이를 독도연구소의 김화경 소장이 「일본 측은 스스로 국경선을 구분해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한 증거」라고 하는 건 역사의 진실을 무시한 벽설(僻説;1. 괴벽스러운 주장. 2. 도리에 어긋난 주장.)이다. 에도시대, 마츠시마(松島)라 불렸던 현재의 다케시마(竹島=리앙쿠르암=독도)은 시볼트의 지도에서 울릉도가 마츠시마(松島)로 되었기 때문에 1905년에 일본령으로 편입됐을 때 호칭이 바뀌어 울릉도를 의미하는 다케시마(竹島)로 명명된 것이다.

  한국 측이 자주 문제로 삼는 태정관지령(「다케시마 외 한 섬, 일본과 관계없음을 명심할 것(竹島外一島の儀、本邦関係之無し)」)의 다케시마(竹島)와 마츠시마(松島)도 소재불명의 다케시마(竹島)와 울릉도의 다른 이름이 된 마츠시마(松島)를 일본의 영토와 관계없다고 한 것뿐으로 현재의 다케시마(竹島=독도)를 일본의 영토에서 제외한 것은 아니다. 한국 측에서는 문헌과 고지도를 가볍게 해석해 다케시마(竹島)는 한국령이라 하고 싶은 것이겠지만, 본래 한국령이 아니었던 다케시마(竹島=독도)를 자국영토로 삼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이번의 「동해 독도 고지도전」도 그렇고, 영남대학교의 독도연구소도 그렇고, 문헌과 고지도의 일부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거짓 역사를 날조하는 건 일한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하자를 남기는 일이 된다. 일부러 쓴 소리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http://www.pref.shimane.lg.jp/soumu/web-takeshima/takeshima04/takeshima04-2/takeshima05h.html

 

 

독도본부 2012. 02.15.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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