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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3 『일러전쟁실기(日露戦争実記)』제76편 부록「한국전도(韓国全図)」에서의 다케시마 기재에 대해

시마네현홈페이지 201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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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10일
총무부 총무과
小室
TEL : 0852-22-6766
Mail : soumu@pref.shimane.lg.jp
  
 이번에 다케시마(독도) 시마네현 편입 직후에 간행되어 한국 측이 다케시마(독도)를 한국령이라 주장하는 근거의 하나로 삼고 있는 『일러전쟁실기(日露戦争実記)』제76편(1905년 6월 20일 발행)을 다케시마자료실이 입수했습니다. 내용을 확인한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記)

1.표제  『일러전쟁실기(日露戦争実記)』제76편(『사진화보(写真画報)』제25호『한국사진첩』)

2.발행자  박문관(博文館/도쿄시 니혼바시구)

3.발행연월일  1905년 6월 20일

4.소장자  다케시마자료실
  ※『일러전쟁실기(日露戦争実記)』제76편의 원본은 다케시마자료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록「한국전도(韓国全図)」는 현재 다케시마자료실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특기사항에 대해서는 별첨을 봐주십시오. 

 일러전쟁실기
『일러전쟁실기(日露戦争実記)』제76편 부록「한국전도(韓国全図)」에서의 다케시마 기재에 대해

2011년 2월 10일
총무부 총무과 고무로
TEL: 0852-22-6766

이번에 다케시마(독도) 시마네현 편입 직후에 간행되어 한국 측이 다케시마(독도)를 한국령이라 주장하는 근거의 하나로 삼고 있는 『일러전쟁실기(日露戦争実記)』제76편(1905년 6월 20일 발행)을 다케시마자료실이 입수했습니다. 내용을 확인한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記)

1.표제  『일러전쟁실기(日露戦争実記)』제76편(『사진화보(写真画報)』제25호『한국사진첩』)
2.발행자  하쿠분관(博文館/도쿄시 니혼바시구)
3.발행연월일  1905년 6월 20일
4.소장자  다케시마자료실
 ※『일러전쟁실기(日露戦争実記)』제76편의 원본은 다케시마자료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록「한국전도(韓国全図)」는 현재 다케시마자료실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5. 특기사항
  ① [일러전쟁실기]에 대해
    ▪메이지시기, 일본최대 출판사로 융성했던 도쿄의 하쿠분칸(博文館)이 발행한 잡지에    일러전쟁 시의 전황을 사진을 곁들여 자세히 보도. 1904년 2월부터 1905년 12월 사이의 110편까지 매월 3회, 그리고 매월 1회의 [사진화보]로 간행.
    ▪이번에 다케시마자료실이 입수한 것은 다케시마(독도) 시마네현 편입 직후인 1905년 6월 20일에 발행된 [일러전쟁실시] 제76편에서 [사진화보] 제25호 [한국사진첩]으로 간행된 것임.
    ▪이 잡지의 부록으로 [한국전도]가 수록되어 있어, 지도에는 [일러전쟁실기](제76편 부록, 1905년 6월 20일 발행)라 되어 있다. 한반도 동쪽에 울릉도와 다케시마(독도) 기재가 있고, [울릉도(마츠시마)], [다케시마(리앙쿠르암)]이라 기재되어 있다.
    ▪[일러전쟁실기] 제76편은 금년 1월에 사이타마현 내의 고서점에서, 그리고 부록 [한국전도]는 작년 6월에 히로시마현 내의 고서점에서 입수했다.
  ② 한국 측의 주장에 대해
    ▪독도연구의 제1인자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가 다케시마(독도)를 한국령이라는 근거의  하나로 이 [한국전도]를 들고 있다.
     [일본국내에서조차도 1905년에 출판된 지도와 출판물에는 [독도]를 한국령이라 분류해  기록한 것이 다수 나왔다. 예를 들어, 일본 도쿄의 최대 출판사의 하나인 하쿠분관(博文館)은 1905년 6월 20일 [일러전쟁실기]라는 방대한 일러전쟁승전기념문집을 출판했지만, 그 제76편의 부록으로 1905년 6월 현재의 한국전도(345*48cm)를 내면서 [독도]를 한국령으로 분류해 수록하고 있다]([독도문제100문100답], 2007년, p.88.초출은 2000년)
  ③ 다케시마자료실에서 확인한 사항
     (제75편 전시총화)
     ▪[일러전쟁실기] 중, 제76편 전후를 확인한 결과, 제75편(1905년 6월 13일 간행)에서  일러전쟁 시에 종군기자로 활약한 소설사 다야마 가타이(田山花袋)가 [전시총화(戰時叢話)]“리앙쿠르암(リヤンコールド岩)”]을 집필(pp.115-117)함.
     ▪거기에는 [금년 2월, 처음으로 공공연히 우리나라(일본) 영역에 들어가 시마네현 소관 및 관할로 정해져 그 4개월 후에 그 섬 부근에서 적 함대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줄이야!], [다케시마(독도)는 원래 무인도였지만 최근 시마네현의 어떤 어부가 이주해 한 채의 작은 집이 덩그러니 바위그늘에 세웠다고 한다,(후략)]이라 되어 있어 다케시마(=리앙쿠르암)가 1905년 2월에 우리나라(일본) 영역으로 포함되어 시마네현의 소관 및 관할로 정해졌다는 기록을 확인함.
     (한국사진첩)
     ▪[일러전쟁실기] 제76편([사진화보]제25호)인 [한국사진첩](1905년 6월 20일 간행)에서는 p.35에 노츠 쇼스이(野津嘲水)가 [아~다케시마(ああ竹島)]라는 기사를 투고하여, [다케시마(이른바 리앙쿠르암)는 원래 사람이 살지 않고 소속이 없는 하나의 작은 섬이었지만 올해 처음으로 우리 시마네현의 관할로 속하게 되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이 섬은 울릉도인(중략) 아~ 다케시마여, 다케시마여 (후략)]이라 기재되어 다케시마(리앙쿠르암)가 1905년에 시마네현의 관할이 된 기재를 확인함.
     ▪노츠 쇼스이(野津嘲水)(1875년~1900년)는 마쓰에의 사람으로 산인신문(현재의 산잉추오신문) 주필, 시마네현립도서관 초대관장, 모치다무라(持田村/현재의 마쓰에시)의 촌장을 역임했다.
     (한국전도)
     ▪[한국사진첩] 부록인 [한국전도]에는 야마구치현 등, 츄코쿠지방의 일부와 쓰시마 및  이키(壱岐) 등 규슈지방의 일부도 기록되어 있으며, 국경선도 없는 것을 보면 이 지도를 가지고 다케시마(독도)가 한국령이라 판정할 수 없다.
     ▪이번 자료의 발견으로 [일러전쟁실기] 제76편 부록 [한국전도]에 대한 한국 측의 지적은 명백히 틀렸다는 사실을 확인함.
    (정리)
     ▪[일러전쟁실기] 제75편 및 제76편에서 다케시마(리앙쿠르암)가 1905년 2월에 우리나라(일본)의 영역으로 포함되어 시마네현의 관할 하에 놓이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것, [일러전쟁실기] 제76편 부록인 [한국전도]에서 다케시마(독도)가 기록되어 있는다고 [일러전쟁실기]의 편자가 다케시마(독도)를 한국령이라 인식하고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http://www3.pref.shimane.jp/houdou/press.asp?pub_year=2011&pub_month=2&pub_day=10&press_cd=A32EA77B-A82D-44F5-ABEA-ACB079D2817F

 

독도본부2012.01.04.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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