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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고교생 약400명을 대상으로 국경선 긋게 했더니…

서일본신문 2011.11.27

 (일본)전국의 고교생 약400명을 대상으로 일본청년회의소(日本青年会議所)가 동중국해와 일본해 등의 지도를 보여주고 국경선을 긋게 했다. 정답률은 전체적으로 낮았다.

▼동중국해에 대한 정답률은 26%로, 다케시마(독도)가 있는 일본해는 10%에 미치지 않았다. 일본해에서는 다케시마(독도)와 한국령인 울릉도를 헷갈리는 학생이 많았고, 「배우지 않았다」고 답한 학생도 많았다고 한다(산케이신문).

▼다케시마(독도)에 대해서는 성인도 포함해 아래의 것을 알아 두자. 첫 번째,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으로 일본의 영토로 인정되었다. 두 번째 1952년에 한국정부는 한국명으로 독도라 부르는 다케시마(독도)가 자국령에 포함되도록 이승만라인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세 번째로 노・다니엘(Roh Daniel)저 「다케시마밀약(竹島密約)」(소시샤=草思社)은 1965년의 국교정상화 때에 교환된 것으로 보이는 「밀약」을 든다. (국교정상화의)최대 장애였던 다케시마(독도)문제는 「보류」한다는 내용으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소위「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일단 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解決せざるをもって解決したとみなす)」. 선인들의 지혜라 하겠다.

▼밀약을 기록한 종이는 전두환 정권시절에 잃어버렸으며, 2대 후인 김영삼 정권 때에는 밀약의 정신도 잃어버렸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한 양국의 정계관계자로부터 증언을 모았다. 「기록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도.

▼「한국, 다케시마(독도) 부두 구상, 관광시설도」라는 내용이 몇 일전에 보도되었다. 다케시마(독도)까지 고속선이 매일 출발하고 있는 울릉도에도 해군기지건설을 구상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저번달에 보도되었다. 실효지배를 한층 강화하려는 것 같다.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일단 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解決せざるをもって解決したとみなす)」는)선인들의 지혜는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と数日前に報じられた。

 

독도본부2011.12.1.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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